부모님과 떠나는 발리 여행, 욕심을 버리니 보이는 것들
오늘 누군가와 발리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가족여행이라고 했다. 성인 다섯 명. 아마도 부모님 두 분과 자녀들, 어쩌면 배우자까지 함께하는 여행일 것이다.
처음에 그 사람이 물었던 건 "호핑투어"였다. 발리 하면 떠오르는 그 장면들—에메랄드빛 바다 위를 스피드보트로 달리며 여러 섬을 돌아다니고, 스노클링으로 형형색색의 열대어를 구경하고, 인스타그램에서 본 그 유명한 절벽 위에서 사진을 찍는 것.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그런 여행이다.
SNS가 만들어낸 '완벽한 여행'의 환상
솔직히 말하면, 요즘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발리 3박 4일 완벽 일정"이 넘쳐나고, 인스타그램에서는 누사 페니다의 켈링킹 비치에서 찍은 T-Rex 모양 절벽 사진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 장면들을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나도 저기 가야 해. 저 사진 찍어야 해. 저걸 안 하면 발리를 제대로 즐긴 게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오늘 대화를 나누면서 깨달은 게 있다. 여행의 목적이 뭐냐에 따라 "제대로 된 여행"의 정의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누사 페니다 호핑투어는 분명 멋진 경험이다. 하지만 그 투어가 어떤 건지 아는가? 아침 일찍 사누르 항구로 이동해서 스피드보트를 타고 40분에서 1시간을 달린다. 파도가 세면 배가 꽤 출렁거린다. 섬에 도착해서는 절벽을 오르내리며 포인트를 돌아다닌다. 켈링킹 비치의 뷰포인트까지 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한참 내려갔다 올라와야 한다. 스노클링 포인트에서는 물살이 세서 어느 정도 수영 실력이 필요하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저녁에는 녹초가 된다.
20대, 30대 젊은 친구들끼리라면? 최고의 하루가 될 수 있다. 체력 소모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지치면 숙소 돌아와서 맥주 한 캔 마시며 사진 정리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모님의 체력, 생각보다 중요한 변수
부모님 세대는 우리와 다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몸이 다르다. 같은 열대의 더위여도 우리보다 더 힘들어하시고, 같은 거리를 걸어도 무릎에 더 부담이 간다. 스피드보트의 출렁임이 우리에게는 스릴이지만, 어르신들에게는 멀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오늘 대화를 나눈 그 사람도 처음에는 호핑투어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부모님 모시고 가는 거예요"라는 한마디가 나오자, 내 추천은 완전히 달라졌다.
탄중 베노아(Tanjung Benoa)라는 곳이 있다. 누사두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작은 해안 마을인데, 발리의 워터스포츠 중심지로 불린다. 여기서 출발하는 "거북이 섬(Pulau Penyu) 투어"가 있다. 글라스 바텀 보트—바닥이 유리로 된 배—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작은 섬에 도착한다. 거기서 거북이, 뱀, 박쥐 같은 동물들을 구경하고, 원하면 주변 얕은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다.
이게 왜 부모님 모시기에 좋으냐고?
첫째, 가깝다. 누사두아의 웨스틴 리조트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이른 아침에 허겁지겁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둘째, 짧다. 전체 일정이 2~3시간이면 끝난다. 오전에 다녀와서 점심 먹고 리조트 수영장에서 쉴 수 있다.
셋째, 편하다. 배를 오래 타지 않아서 멀미 걱정이 적고, 글라스 바텀 보트라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바다 속 산호초를 구경할 수 있다.
넷째, 체력 소모가 적다. 절벽을 오르내릴 일도 없고, 강한 물살과 싸울 일도 없다.
"호핑투어"라는 이름에 집착하지 않기
재미있는 건, 거북이 섬 투어가 엄밀히 말하면 "호핑투어"는 아니라는 점이다. 호핑투어는 여러 섬을 "홉(hop)"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거북이 섬 투어는 딱 한 곳만 가니까. 그런데 그게 뭐 어떤가?
여행을 계획할 때 우리는 종종 단어에 집착한다. "호핑투어 했어?" "스카이다이빙 했어?" "그 유명한 데 갔어?" 뭔가를 "했다"고 말하고 싶은 욕망. 체크리스트를 완수하고 싶은 욕망. 그래야 여행을 "제대로" 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 같은 기분.
하지만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부모님이 "와, 거북이 진짜 크더라"하고 웃으시는 것. 얕은 바다에서 마스크 쓰고 물고기 한 마리 보시면서 "어머, 신기해"하시는 것. 보트 위에서 바람 맞으며 사진 한 장 찍어드리는 것. 돌아오는 길에 "오늘 재밌었다" 한마디 하시는 것.
그게 전부다. 그게 전부면 된다.
리조트 선택의 철학
오늘 대화에서 또 인상 깊었던 부분은 리조트 선택이었다. 그 사람은 두 곳을 고민하고 있었다. 사누르에 있는 마야 리조트와 누사두아에 있는 웨스틴 리조트.
마야 사누르는 발리 전통 감성이 살아있는,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리조트다. 사누르 해변가에 있어서 호핑투어 출발지인 항구까지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 주변에 로컬 맛집도 많고, 해변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서 저녁에 부모님과 함께 걷기 좋다.
웨스틴 누사두아는 글로벌 체인 호텔답게 시설이 크고 다양하다. 수영장도 여러 개고, 레스토랑도 다양하고, 스파도 잘 되어 있다. 누사두아 관광단지 안에 있어서 치안이 좋고 정돈된 느낌이다. 대신 밖에 나가서 뭔가를 하려면 이동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내린 결론은 웨스틴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리조트에서 힐링하고 싶어요."
이 한마디가 모든 걸 결정지었다.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매일 밖으로 나가서 뭔가를 하는 것보다, 리조트 안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영장에서 느긋하게 수영하고. 풀사이드 바에서 칵테일 한 잔 마시고. 스파에서 발리니즈 마사지 받고.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저녁 먹고. 하루쯤은 탄중베노아 나가서 가벼운 액티비티 하고. 나머지는 그냥 쉬는 거다.
욕심을 버리면 보이는 것들
요즘 여행 계획을 세울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짜는 것. "오전에는 여기 가고, 점심은 저기서 먹고, 오후에는 이거 하고, 저녁에는 그거 보고…" 구글 지도로 동선 짜고, 평균 이동 시간 계산하고, 분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면 피곤하다. 집에 돌아와서 "휴식이 필요한 휴가였다"는 아이러니한 말을 하게 된다.
부모님과의 여행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젊은 우리도 피곤한 일정은 어르신들에게는 고역이다. "괜찮아, 아직 할 수 있어"하시면서 따라오시다가 다음 날 몸살 나시는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런 생각을 했다. 여행의 본질은 뭘까? 새로운 곳을 가는 것?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 물론 그것도 맞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일상에서 벗어나 쉬는 것 아닐까.
특히 부모님과 함께라면, 그 "쉼"의 의미가 더 커진다. 평소에 바쁜 일상 속에서 잘 못 뵙던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그냥 같이 있는 것. 아침에 같이 조식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 것. 수영장 옆 선베드에 나란히 누워 책 읽거나 낮잠 자는 것.
그게 진짜 휴가다. 그게 진짜 여행이다.
마치며
발리는 정말 매력적인 여행지다. 볼거리도 많고, 할 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맛있다. 우붓의 라이스 테라스도 아름답고, 스미냑의 비치클럽도 힙하고, 울루와투의 절벽 사원도 장엄하다.
하지만 모든 걸 다 할 필요는 없다. 특히 부모님과 함께라면.
오늘 대화를 나누면서 느꼈다. 좋은 여행은 얼마나 많은 곳을 갔느냐가 아니라, 함께한 사람들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했느냐로 결정된다는 것을.
누사 페니다의 켈링킹 비치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모님이 "아이고, 너무 힘들다" 하시면서 땀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탄중베노아의 잔잔한 바다에서 거북이 등을 만지시며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훨씬 값지지 않을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왜 이 여행을 가는 걸까? 누구와 함께 가는 걸까? 그 사람들은 무엇을 원할까?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다 보면, 화려한 버킷리스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그 자체가 선물이다. ⭐